때늦은 사춘기
(리뷰) 파시스트 되는 법 본문
파시스트 되는 법, 미켈라 무르자 지음, 사월의책 출판
0. 책의 본질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파시스트가 되는 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진짜 파시스트가 되라고 권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미켈라 무르자는 파시스트로 빙의하여 일종의 풍자를 위하여 이 책을 썼다.
그렇다고 이 책이 민주주의가 파시즘보다 우월함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민주주의의 모순과 파시즘의 매력에 대해 느낄 수 있었으니까. 이 책은 경고하는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은 몰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도구와 모순 속에서 언제나 자생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를 집어삼킬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파시즘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극우 세력의 준동과 선민사상으로 무장한 진보 세력 등 우리 세상에는 겉으로 내세우지 않을 뿐 파시즘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의 큰 틀을 깰 정도는 아니나 이미 그간 쌓아왔던 원칙이 후퇴하는 경우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1. 민주주의의 모순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평등을 철칙으로 삼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이러한 철칙과 원칙은 대체로 지켜지긴 하지만 온전하게 지켜지진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평등과 자유가 현실에서 모순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무엇보다 자본주의로 인한 계급의 형성이 민주주의의 평등 원칙과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진 자, 가난한 자 모두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엄연히 지도자가 있으며 국회의원이라는 국민의 대표자가 존재한다. 형식적으로는 봉사자지만 엄연히 위계질서가 존재한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 체제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잘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질서 유지를 위해 국가만이 폭력을 독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폭력에 너무 많은 제한을 가한다. 그 결과 지난 번 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 같은 교권 붕괴, 얻어맞는 경찰 등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이 생긴다. 인권이라는 다른 원칙에 의해서. 물론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필요하고 국가에 의한 폭력이 제한을 받아야 되는 건 맞지만 현실에서 가진 자 또는 무례한 자에게 더 유리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냥 내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패자 부활을 허용하는 선거제도는 정책의 일관성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으로 정책 추진을 어렵게 하며 의사결정 과정에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게다가 과거 조선 중기 조정처럼 실제로 일하는 사람보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힘이 쏠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른바 안락의자 행동가들 말이다.
이러한 모순에도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가 없다.
2. 파시즘의 유용성
반면 파시즘은 매우 유용하며 유능하다.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과 경제라는 렌즈로.
시간적 측면에서 파시즘은 민주주의에 비해 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몇 백명의 사람들이 토론하는 것보다 10여 명의 사람들이 의사 결정하는 것이 더 빠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많은 사람이 토론한다고 그 결론이 더 낫다는 보장도 없다. 보통 임기응변이거나 임시방편인 경우가 많다. 오늘날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대문 아닌가.
게다가 선거제도로 인해 5년으로 제한된 한국의 대통령제는 정책의 일관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실제로 대통령, 시장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엎어지는 경우가 항상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실제로 당장 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항상 후순위로 밀려나지 않았던가?
경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선거는 공짜가 아니다. 비용이 든다. 선거에 참여하는 피선거자(후보자)들도 마찬가지지만 행정 비용도 절대 공짜가 아니다. 게다가 부정선거로 재선거하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그 누구도 민주주의가 경제적이라고 말하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의견이 소중하다는 일종의 평등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여러 위원회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다. 물론 실제로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런 위원회를 운영하는 것 역시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봤을 때 여러가지 면에서 민주주의가 과연 파시즘보다 유용하거나 유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
3. 방법론으로서 파시즘
(1) 적을 만들어라
민주주의에서는 적이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걸 기본 원칙으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는 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대'가 존재할 뿐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
그러나 파시즘에서 적이란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히틀러는 '유대인''공산주의''집시' 등 다양한 적을 만들어 독일을 장악했다. 사실 이들이 실제로 존재할 필요도 없다. 어디까지나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적에 대항하는 '영웅'이 필요해진다.
여기서 하나 더 추가하자면 적은 위협적이어야 한다. 언제나 말이다. 위협적이지 않은 적은 적이 결코 사람을 뭉치게 하지 못한다. 타도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전문가의 권위를 무너뜨려라
전문가는 그 전문성으로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에서도 정당한 위계질서를 인정받고 있다. Leader가 아니라 Head가 되고자 하는 파시스트 입장에서 전문가는 상당히 껄끄러운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파시스트는 전문가의 권위를 무너뜨려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방법은 있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전문가의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실제로 지구가 평평하다는 학설이나 창조 과학과 같은 유사과학이 이런 방식으로 기존 과학계를 폄하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은 절대 자신들의 실패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을 끌어드려 목소리를 낸다.
역사 쪽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환단고기를 추종하는 자들이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네오나치들은 위에서 언급한 유사과학과 같은 방식으로 기존 역사학계를 폄하하거나 자신들의 학설과 동급으로 놓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식민주의나 파시즘에 경도된 것으로 몰아세운다.
이런 식으로 전문가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식으로 파시스트는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
(3)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라
오늘날 소셜미디어는 모든 소식을 빠른 시간 안에 퍼트릴 수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정부가 숨기거나 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도구들은 정보의 독점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실제로 아랍의 봄에서 SNS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참고] SNS가 튼 변혁의 물꼬 (hankookilbo.com)
SNS가 튼 변혁의 물꼬
2010년 12월 한 노점상의 분신자살로 시작된 튀니지 반정부 시위가 '재스민 혁명'으로 25년 만에 정권을 엎었고, 그 불길이 이집트 예멘 리비아 독재권력까지 잇달아 허물고 이란 요르단 등 아랍권
www.hankookilbo.com
그러나 SNS는 파시즘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파시즘의 주요한 선전도구인 선동, 반복과 SNS는 상당히 유사하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트럼프를 생각하라. 가짜뉴스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기를 한다면 그 영향력은 실제 뉴스에 못지 않다. 설령 나중에 가짜라고 밝혀진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단순히 메시지를 수신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유포했기 때문에 이를 쉽게 인정하지 않거나 다른 이유로 합리화할 것이다. 그렇다. 이는 Head에게 유리한 게임이다.
(4) 그 외
파시스트는 복잡한 것을 사소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기억해야할 것은 "단순하게"가 아니라 "사소하게"라는 꾸밈말이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든다고 해서 문제를 회피할 순 없다. 도리어 반격을 당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파시스트라면 문제의 복잡성을 단순화 시킬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유사역사학자들이 이런 언사를 즐겨 사용한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주장과 근거는 매우 중요하다며 계속 반복하지만 다른 학자들이 제기하는 반론, 문제에 대해서는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능구렁이처럼 넘어간다. 그러면서 다시 자신의 주장을 반복, 또 반복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유사역사학에 심취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계속 듣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파시스트는 듣고 싶은 말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민주주의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포퓰리즘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잃는다는 두려움은 모든 사람이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부자건 빈자건 상관 없는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 유명한 철학자들을 배출한 독일이 어떻게 나치즘의 광기에 물들었나?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 아니겠나? 나치는 유대인을 적으로 만들어 이 두려움을 자극했다.
그 다음으로 독일 민족, 그러니까 아리아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종이며 독일인은 특별하다고 선전했다. 이는 당시 패배감에 젖어 있던 독일인들에게 매우 달콤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흐름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이 지식인들의 저항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형적인 안락의자 행동가답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라지거나 다른 나라로 넘어가버렸다.
사실 나치가 집권하던 시기는 대공황으로 독일이 열악한 시기였다. 현재 파시스트는 그렇게 명예로운 칭호는 아니기 때문에 선배들에 비해 매우 불리한 환경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계속 이야기하지만 민주주의는 여러 모순을 가지고 있다.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자들에게 굳이 파시스트임을 내세울 필요는 없다. 트로이를 멸망시켰던 트로이 목마처럼 적이 아니라 '상대'로 나를 소개하라. 그렇다면 그들은 내 주장을 비판하면서도 퇴출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실 이건 민주주의자라고 스스로 굳게 믿는 이들도 자주 하는 정치적 술수인데 가급적 책임 전가는 적 전체에게, 칭찬은 적 개인의 예외적 행동으로 돌려라. 민주주의 정치인들도 자주 하는 행위라는 것을 볼 때 어쩌면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4. 오늘날 파시즘
오늘날에도 파시즘은 그 모습을 다양하게 변모할 뿐 여전히 살아 있다. 온전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것처럼 파시즘의 완벽한 파멸 역시 불가능한 것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자신들을 다른 사람과 구별짓는 것이다. 즉, 장벽을 쌓는 것이다. 무리짓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무리짓기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본성 중 하나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다.
이렇게 장벽을 쌓고 자신들을 다른 시민과 분리시킨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연대감을 주고 받는다. 말로는 모든 사람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어디까지는 자신의 이념과 신념에 '동의'한 사람들에게만 연대감과 도움을 주고 받는다.
이렇게 구별에 성공한 이들은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대립을 이용한다. 또는 적극적으로 이를 조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정의롭게 포장한다. 아니, 스스로 정의롭다고 착각한다.
목소리를 높이고 발언권을 얻은 이들은 마지막으로 법이라는 무기, 책임이라는 핑계로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한다. 이들의 술책은 매우 교묘해서 이견을 제기하는 이들은 다른 시민에 의해 소외받기도 한다.
이들의 사례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일베, 메갈과 같은 극단적인 단체가 주를 이루며, 페미니즘, 생태주의 등 후기 사상에도 얼마든지 파시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상 그 자체보다는 이 사상을 추종하는 이들이 문제다. 언제나 그렇듯이.
5. 민주주의의 위기
민주주의에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각종 권리의 보장에 비례해 의무와 책임을 등한시한 결과 갑질을 일삼거나 무례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어느 시대든 문제아들은 존재했다. 문제는 이 문제아들을 어떻게 제어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한 사람들이 역으로 차별받는다. 이 문제아들은 법을 아주 잘 활용해서 선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이들은 백래시 운운하며 자신의 주장을 반대하는 이들을 나쁜 시민으로 몰아가지만 정작 자신들의 행동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파시즘은 마침내 다시 부활할 것이다. 아니, 이미 부활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참고]
-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https://namu.wiki/w/서울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 인천 헬스트레이너 폭행 사건: https://www.yna.co.kr/view/AKR2023071006860006